미련을 갖고 그 일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폭염속에서 3시간 동안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풀숲을 헤매이며 마치 어린이가 잠자리를 쫓듯...
오후 4시가 넘어서 KTX에 올라 어렵게 힘들게 담아 온 곤충사진들을 들여다 보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산역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차내방송이 나오고 이어 객실에서 젊은 여자가 어깨에 울러맨 가방, 여행용 슈트케이스를 합쳐
모두 4개의 보따리를 들고 힘겨워 하면서 출입문 통로쪽으로 걸어 나온다
"부산으로 피서 오나 보다" 하면서 카메라 전원을 끄고 나도 출입문 앞에 줄을 섰다
얼른 내려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1초라도 빨리 내리고 싶어서였다
부산역이 종착역이라 KTX 출입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여행에 지친듯 조금이라도 먼저 내릴려고
줄을 섰고 조금전 보았던 그 여자는 짐이 많아서 두개를 먼저 내려 놓고 다시 승차해서 나머지 큰 가방도 내릴 참이었다
복잡한 통로에서 그렇게 한다면 모두들 불편하고 번거로울테고 내가 짐 한개만 들어준다면 간단할것 같아서
"KTX 발판 아래까지만 제가 하나 들어 드릴까요?" 했더니 조금 멈칫하다가 고맙다고 한다 "가방이 무거울텐데요..."
어라? ㅎㅎㅎ 골프 보스톤백 같은데 꽤나 묵직하다 ㅎㅎ
가방을 플랫폼에 내려다 주니 그 여자는 어깨에 가방을 하나 걸치고 한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가방 손잡이에다 또 다른 가방을 걸치고...도대체 어떻게 가져갈것인지 옆에서 보니 안타까울지경이었다
또 다시 내가 말했다 "가방을 택시 타는곳까지 들어 드릴께요" 하면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집에서 아저씨가 차를 가지고 나올거지예?" 했더니 아니라 한다
대합실로 나오자 목이 마르다며 얼른달려가 캔커피를 두개 사 가지고 와서 하나 건네주면서
화장실에 갔다 올테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나도 목이 마르던 참에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커피향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후딱~~~!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 보였고 우리는 다시 짐을 들고 택시 승강장 앞에 있는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자는
말에 좋다고 말했다. 머리에 커다란 선그라스를 걸친 그녀는 나이가 30대 후반? 하긴 나는 나이를 볼 줄 모르니...
벤치에 앉자 마자 담배를 꺼내어 여유있는 모습으로 길게 한모금 내 뱉는다. 그것을 보고 나도 담배 생각이 났다
"카메라를 울러맨 나의 모습을 의식한것인지 나에게 다시 묻는다 "사진을 좋아하시나 봐요"
"재미있잖아요" 나는 간단히 대답하면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어머 담배 피우세요?" 하면서 "괜히 저 때문에 바쁜 시간 내는것 아니세요?" "버스 탈건데 택시를 타고 가는건 아닌지"
이런 저런 간단한 질문을 했지만 나는 그냥 "예"라고만 대답하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택시 트렁크 안에 까지 짐을 옮겨 드릴께요" 했다
그녀는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담배를 또하나 더 피우기 시작했다.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지만 멋을 부릴줄 아는 여자 같이 느껴졌고
세련미도 보였다. 나는 내가 연약한 여자의 무거운 짐을 신사의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 드리고자 하는 맘이 혹시 오해를 받을까봐
부담스런 질문이나 대화는 하지 않을려고 했다
"오늘 사진 다 찍으셨어요?" 하고 물었을 때는 "아닙니다, 해운대가서 야경을 또 찍을려고 합니다" 하면서
그녀와 함께 해운대로 가고도 싶었지만(그녀의 행선지가 해운대였으니까 ㅎㅎ)...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는 내게 여러가지의 간접적인 제안으로 내 작은 호의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것 같다
지금까지 기차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짧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인연인것 같고
그녀가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다시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해운대 달맞이길로 간다고 하던데 그쪽에 살지도 모르고 아님 서울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반시간이 채 되지 않는
낯선 사람과 함께한 그 순간들을 생각하니 부끄러움과 미련이 잔뜩 쌓여 버린것 같다. 무슨 미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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