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산을 깍아내고 지은 아파트인것으로 기억된다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가 나고나서 몇해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파트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를 뒤로 한 채 부산 지형의 특성상 산기슭에 시영아파트가 들어서고 철거민들이 속속 입주해 왔다
2가구에 하나씩인 화장실에다 복도 등 공용면적을 다 합해도 10평 남짓한 곳
나는 그곳에서 15년을 살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것들 중 하나가
그 당시 아파트 입주자들의 월부금이 3,000원 안팎이었는데
그 돈을 내지 못해 장농에 붉은 압류딱지가 붙은 집도 보았고 그렇게 벌어서 20년간 불입을 하고 나니
내집이 되었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가서 전셋방도 하나 못 얻을 시세로만 남았단다...
한때 재건축바람이 불어 조합까지 결성되어 잘 추진되는 듯 했지만
조합장의 비리로 인해 무산되고 그곳에서 오래 살던 나이 드신분들은 허럼한 집이었지만
그래도 내집이라는 편한함도 다 날려버리고 전셋방으로 물러 났다
한동에 90세대가 살았고 인근에는 번개시장도 번창해서 사람사는 공기가 느껴졌지만
지금은 불과 10여 가구만이 남아 어스러져 내릴 듯한 어두컴컴한 콘크리트속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 뒷켠에는 깨어진 창문유리조각이 널부려져 있고 아무렇게나 핀 잡초들이 무성하고 빈집은 비둘기의 집이 되어 버린곳도...
선거철만 되면 엉터리 정치인들이 와서 재개발이다 뭐다하면서 침이 마르도록 거짓공약을 뿌려 놓고 간다
이번 대선에서는 또 어떤 사탕발림으로 노인들을 실망시킬지...흉물스런 이곳 풍경을 차마 더 담을 수 없는 이유는
...
...
바로 이곳이 제2의 내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폐가가 되어 버린 저곳 창가에서 비둘기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여든이 훌쩍 넘어버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시골에서 사 온 고추를 말리고 또 그것을 팔기도 한다네
한근에 17,000원~~~나의 아버지, 이웃 어른들, 이분들의 아들 딸들이 나의 친구, 동생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