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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欲知島) 여행

인수와 東根 2010. 12. 4. 11:19

셀러리맨 생활 25년, 지독하리 만큼 병가, 지각, 조퇴 없던 내가 년말이 가까워지면서 주어진 휴가 2일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한려수도 남단에 위치한 욕지도(欲知島)에 가기로 했다. 높지 않은 산-천황봉, 욕지고구마(빼때기죽), 욕지감귤, 각종 해산물...그 소문을 따라서...

 

목요일 아침에 아들 등교시간 07:30, 처음으로 승용차를 태워 학교에 대려다 주고(자가용 등교는 아들에게 버릇들이기 싫다) 

서마산IC로 들어간다는것이 도로표지판을 지나쳐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2시간 정도가 걸려 도착한 터미널, 잔뜩 흐린 날씨때문에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 오랜만에 나섰는데 날씨가 이게 뭐람 ㅠ

남들처럼 달리는 배위에서 사진 한번 남겨 놓는것은 당연한것이 아닐까? 곧 내릴것 같은 비때문에 걱정이다. 섬여행에서는 육지여행과 달리

일기에 바짝 신경을 써야한다. 바람이 거세거나 비가 내리면 육지로 나가는 배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에궁...이제 나도 많이 늙었네 ㅠ 

통영-연화도-욕지도, 연화도에 도착할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내가 그토록 좋아하지만 그날 따라 얄미운 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차를 싣고 섬에 들어가면 왕복 50,000원인데 자그만 섬구경할려고 차를 가져 오기는 싫어서 터미널에 하루 8,000원으로 주차를 해 놓았다

욕지도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부둣가 큰 횟집에 들어갔는데 옆좌석에는 젊은 부부가 물메기탕을 먹고 있었다

釜山의 물메기와는 맛이 틀린다는 이유로 한그릇에 10,000원, 그런데 내가 즐겨 가는 롯데호텔 뒷편에는 푸짐한 기본반찬에다 한뚝배기에 6,000원인것과 비교해서는 곱절이 비싸다. 그래서 회덮밥을 2인분 시키면서 "아줌마 회덮밥에 어떤 고기가 들어 갑니까?" 하고 물어도 일하는 사람이나 주인 아주머니는 대답도 안한다. 낯선곳에 와서 그런지 기분이 더 썰렁했다. 이윽고 나온 회덮밥에는 방어새끼(30cm 남짓-육질이 무르다) 몇조각에다 야채투성이 ㅠㅠ 그리고 매운탕이라고 나온것은 뻘건 고등어국 ㅎㅎ 세상에 고등어를 잘개 가루내어 시래기 넣고 추어탕처럼 국을 끓여 먹어는 봤어도 고등어조림도 아니고 매운탕으로 내 주는 횟집은 첨이다. 좋은 경험이야 ㅎ

씁쓸한 마음으로 담배를 하나 피워물고 부둣가 오뎅포장마차 주인에게 말을 건내기 시작했다

 

나 : 아주머니 여기 섬 일주버스는 언제 옵니까?

아주머니 : 배 도착시간에 맞춰 오니까 앞으로 한시간 반이 남았군요

나 : 아주머니 저것이 그 유명한 욕지고구마입니까?

(이때 역시 버스를 타러 왔던 할머니가 대화에 끼여 들었다. 그후 나는 이 할머니와 2시간을 섬에 대해 이야기하며 할머니가 사는 마을로 걸어 갔다, 할머니 마을에 좋은 욕지고구마가 있으니 소개해 준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91살이었고 하루 종일 대화할 사람도 드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욕지도로 시집와서 10년전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들은 산너머 마을에서 참치양식, 딸은 이웃마을 어부에게 시집가고...

할머니 : 여기 먹을것도 없고 볼것도 없는데 뭐할라고 왔소

나 : 인터넷에 보니 싱싱한 해산물도 풍부하고 등산코스도 좋고 티비(1박2일)에 소개되어서 모처럼 휴가 얻어 구경하러 왔습니다

할머니 : 그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된 부분이 있어요(이상과 현실)

 

나는 할머니와 섬일주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2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윽고 통영에서 들어오는 배시간과 맞춰 버스가 도착했다

나 : (버스기사 아저씨 50대 후반) 아저씨 통영가는 마지막배를 탈건데 시간 맞춰서 돌아 주이소

섬에 들어 온지가 25년째라는 아저씨는 관광객들에 대한 불평을 처음부터 끝까지 늘어 놓았다

팬션을 이용하는 육지손님들이 "방천정에 라면 국물 뿌리기, 자연산 회에 대한 불신" 겨울난방비 때문에 오히려 적자 등등

결론은 다시 이곳을 찾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통영가는 마지막 배시간이 다되어 가는데 가랑비 수준의 비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나

유일한 도로가 흙더미로 막혀 버렸다. 어짜믄 존노 ㅠ

서너평 되는 매표소에는 역시 80넘은 할머니 한분이 욕지고구마를 관광객들에게 택배주문을 받고 있었다. 고구마 맛좀 보자는 사람, 포장해둔 박스를 열어서 물건을 확인할려고 하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 택배주소 쓴다고 볼펜 찿는 사람...정신이 없어도 할머니는 물건값을 정확히 챙기고 테이프로 포장하고 능수능란한 솜씨를 보였다. 배시간이 10분 남았다. 이제 육지로 되돌아가면 어디를 가지?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내가 생각했던 섬마을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소문만, 기대했던것 모두 다 현실과 다르다는것만 확인하고 달리는 배 창가에서 수없이 많은 섬들을 두고 통영으로 통영으로 향해 갔다

저녁 6시 가까이 되어 통영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여 주차비 5,000원을 계산하고 터미널 앞의 서호시장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차로 3분거리에 있는 중앙시장으로 갔다. 고무다라이에 놓고 싱싱한 횟감들을 팔고 있는 곳에 가보니 이미 파장분위기였다. 눈에 확띄는 횟감은 없고 그저 평범할 뿐...그기서 게르치(쥐노래미)1kg, 2,000원에 샀다, 시장안을 둘러 보니 꼴뚜기(호래기) 한그릇에 20,000원 10,000원...나는 그렇게 싱싱한 호래기를 본 적이 없다. 몸통, 다리에 있는 갈색점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즉 살아있는 호래기였다. 혼자 먹을거라 부탁해서 5,000원 어치만 사서 바로 앞 양념집(초장집)에 들어 갔다. 양념 1인분에 3,000원 매운탕 8,000원인데 땡초를 시켰더니 나중에 1,000이 추가 되었고 매운탕은 8명이 먹으나 2명이 먹으나 한뚝배기로 양은 거의 차이가 없고 가격은 다같이 8,000원이었다. 게다가 관광객이 가방에 먹다 남은 술이라도 꺼내면 양념값은 5,000으로 받는다고 경고성 문구도 크게 씌여 있었다 ㅎㅎ

난전에서 횟감을 팔던 할머니 한분이 추워서 벌벌 떨다가 10,000원짜리 개불 한접시를 3,000원에 떨어버리고 가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측은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거북선, 충무공축제가 열리는 통영항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겼다. 저 멀리 뒤로 보이는 불빛이 통영 문화회관이고 오른쪽이 찜질방, 모텔들이 조망이 좋은 곳에 있었다

어라? 숙소에 들어가서 샤워할려고 하니 면도기, 칫솔, 피임용품 이런것들은 알겠는데 아래것들은 뭐지? 빨간것은 여성용, 핑크빛은 남성용이고 빨간것은 국산, 핑크빛은 미국산 바르고 10분 후에 충분히 씻은 후 00을 나누세요? ㅎㅎ

또 웃긴것은 재털이와 라이터였는데 라이터에 새겨진 다방이름들이 8개 모두가 "예쁜이 다방, 대학생 다방, 보이지다방, 가지다방, 달려다방..."

이튿날 비는 거치고 햇볕은 나타났지만 강풍으로 인해 케이블카가 12시 이후에 운행된다고 했다.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 산양일주해안도로를 돌기로 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생겨나 서울이나 내륙지방 사람들에게는 매력이 있을지 몰라도 우리 부산사람들에게는 매력있는 곳이 아니었다. 피로가 밀려 왔다. 이틀간 해산물로만 먹거리를 해결했더니 따끈한 국밥생각이 절로 났다

해안도로를 돌다가 "국립 한려수도" 라는 간판이 있어 차를 세우고 가보니 "달아공원"이었다 바람이 세차고 날씨도 차가워 관광객들 서너명뿐...매점에 들러 카푸치노 한잔과 통영꿀빵을 하나 사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지난 봄에 순천/벌교로의 1박 2일 여행은 기차, 버스로만 다녔어도 피곤하지 않고 즐거웠지만(그곳은 인터넷에서 보던것과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10여년전 통영 연화도, 우도로 섬여행을 했을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인터넷에 무수히 올라 온 자료와 이야기들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다. 그 할머니 생각이 난다 "여기 머 볼것도 음꼬 먹을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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