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내가 부산시내 트래킹을 하면서 처음으로 노루귀를 만났다
그때는 낙엽만 무성한 꽃샘추위에 야생화가 있는것 조차도 몰랐는데 일행중에
나보다 산행경력이 훨씬 많고 산속의 야생화, 약초, 나물들을 많이 아는 사람이
중간 휴식지점에서 노루귀를 보고 다들 시선을 집중시켰다.
예쁜줄도 기특한줄도 모르고 40여명의 일행들이 휴대폰카메라까지 동원해서 귀엽고 작은 꽃들을
사진으로 담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해 나는 전년 기록을 다시 찾아내서 다른 사람들 보나 서둘러 그곳을 찾아 갔더니
나이가 지긋한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부지런히 낙엽과 잔가지를 정리하면서 엎드리고 수그리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분홍색, 흰색 어림잡아 10포기 정도되는데 사진찍는 사람들은 스무명이 넘었고
얼핏 카메라를 보아 렌즈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람이 찍는 모습을 엿보고 그 사람이 다 찍고 가면 나도 뒤따라
그 사람 하는 그대로 따라 찍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들을 인터넷을 통해 둘러보니
실제 현장의 꽃보다 훨씬 더 예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당연히 내가 찍은 사진은 폰사진보다 못한 ㅎㅎ
요즘 들리는 이야기는 이제 그곳은 많이 훼손되어 개채수가 많이 감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그곳을 가서 낯선 사람들과 렌즈후드 부딪히며 사진을 찍기가 싫었다
그래서 다시 인터넷을 둘러보다가가 부산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복수초, 노루귀가
많이 있는곳을 알게되어 식구들을 데리고 가 맘껏 꽃구경도 하고 내 나름대로 사진도 많이 찍어 왔다
그러나 사진의로의 가치는 제로, 그저 자연관찰용, 일기장의 삽화 같은 사진일뿐-
사진동호인들과 함께 가서 찍을 때
순수 등산동호인들과 어울려 산행하면서 만난 야생화를 찍을 때와는 딴판이라
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냥 자연의 모습을 기록하는것 그 이상은 없었다
청노루귀,
꽃이 피는 남방한계선이 있어서 경북지방 아래로는 볼 수가 없다는 말에
다른 선배들의 사진으로만 감상하다가 그 색감이 너무나도 강렬하고 예뻐서 결국 혼자 찾아 나서기로 했다
마침 아는 선배가 사진동호회 카페에 그 사진을 올려 놓았고
다음날 나는 바로 전화를 했다.
"선배님 잘 지냅니까? 청노루귀 사진 넘 예쁘데요. 어디가면 볼 수 있습니까? " 했더니
친절하게 위치를 설명해 주신다. 하지만 선배님은 내가 그곳을 찾아 갈 수 있을지 걱정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이틀 저녁을 인터넷으로 청노루귀만을 검색했다.
이제 노루귀는 끝물이라 만일 위치를 제대로 찾아간다 하더라도
온전한 녀석을 만나기란 힘들거다.
그래도 좋다. 시든 얼글이라도 한번 보고 오자. 내년에 서둘러 가면 되지 않는가
네비게이션으로 위치 검색을 하니 단번에 나온다
부산에서 140km(?) 넘는 거리, 집에서 두시간 걸린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 넓고도 넓은 산속에서 어떻게 내가 청노루귀를 만나나?
암울하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동전줍기보다 백배, 천배 어려운 일이지 ㅠ
산불감시초소의 할배가 입산신고부터 하란다
"저기요~~~요즘 사진찍는 사람들 여기 많이 안오던가예?" 하니 많이 안오더라 하네 ㅠ.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이 산에 아직 꽃 안폈지예?" "이 맘때쯤이면 꽃이 좀 피고 해야지 산행하는 맛도 더할텐데요" 했더니
"요즘 꽃 좋~~습니다"
"예? 저기 누런 낙엽들 뿐인데 무슨 꽃이 있습미꺼 ㅠ" 했더니
여기서 2km쯤 걸어가면 작은 절이 나오는데 그기로 올라가면 꽃 많습니다
"아~~예, 그럼 그기로 꽃구경하면서 중간봉우리까지만 올라갔다가 하산하면 되겠네요" 하고
서둘러 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10분쯤 걸으니 사진동호회 선배님이 말해준 식당이 보여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졌다
길가에 남산제비꽃,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개별꽃은 관심도 없고
곧 이어 눈에 익은 꽃 한송이가 나타났다
노루귀다, 흰노루귀인줄 알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햇볕에 바랜 청노루귀이다.
그럼 이 근처에 다른 녀석들이 또 있을 것이다.
일행을 길가에서 잠시 기다리게 해 놓고 큰걸음으로 잡목을 헤치고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니
흰노루귀만 보인다. 도대체 청노루귀는 어디에 있는걸까?
...
... ㅠ
빛이 없으면 사진도 없다
빛의 양, 방향을 헤아리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고
그림을 그리듯 구도를 배치하고...
이 모든것들이 내겐 너무 어려운 숙제다
하늘은 흐렸다가 맑아지고 맑아지면 바람불고 그늘지고
엎드려 숨죽이고 있다가 숨이 차, 좀 있으니 손이 떨린다 ㅎㅎ
내려다 보면서 찍으니 한결 수월한데 빛을 받은 솜털의 줄기는 찍을 수가 없다
꼭 국민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탁자위의 사과를 그리듯
청노루귀는 촛점을 잃은채 사진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다. 아무런 맛도 없는 사진이다.
하지만 푸른빛이 주는 강렬함이 이 작고 기특한 꽃한송이가 내게 주는
엔돌핀이 무한하기만 하다. 난 사진작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것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배고프요. 밥 먹읍시다~~~!!!" 수그렸던 몸을 일으켜 세우니 1시가 훌쩍 넘었네?
운전때문에 반주로 막걸리는 못마시고 소주 세잔 마시고 산속의 맑은 공기를 한없이 들이켰다^^
이렇게 2013년 3월 23일의 토요일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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