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의 동거 2 - 문현동 돌산길
/ 글과사진: 김필연
문현동 전포돌산공원 동남쪽 비탈에 자리를 잡은 돌산 2, 3, 4길 주소를 가진 마을이 있다
동의 이름이 문 문(門) 고개 현(峴)인 문현동은 옛날 부산진과 남구 지역을 연결하는
문의 역할을 하던 고개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항도 부산의 심장 부분에 위치해 있다.
언뜻 보면 여느 산동네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골목을 몇 발짝만 걸어 들어가면 조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화초나 남새거리를 심은 분들이 지붕 위에 올려져 있고
집집이 커다란 저수통들을 이고 있다.
더구나 이 마을 곳곳엔 전선이나 파이프 등이
얼기설기 많이도 엉겨 있다.
그런데 담장이나 울타리 곁에 잡초가 자란
작은 텃밭 같은 것이 눈에 띈다.
텃밭이라 하기엔 제법 높낮이가 있고 봉분이라 하기엔
낮아 보이는,
어떤 곳은 집 옆에
또는 집 앞에
옆구리에
뒷뜰에
현관 앞에
길 한가운데
담 모퉁이에
관념적인 무덤의 느낌과는 달리 대부분 손닿는 곳의 화단처럼
따뜻하고 아늑해 보인다. 이는 모두 봉분이다.
표현 그대로 산자와 죽은 자가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일년에 한두번 선산
찾아 성묘하고 힐끔 얼굴 내비치는 것에 비하면 여기 무덤들은
행복할 것 같다, 항시 눈길을 받고 사람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
봉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씻기고 깎이고 무연고 무덤은 주거공간에
잠식 당해 그 위에 집이 지어지고, 어떤 곳은 위장을 해버려
성묘하러 왔다가 살림집 아래 묻힌 무덤 때문에 분쟁도 잦았다 한다.
멀리 산자락에 공동묘지가 보인다. 이 마을도 초기에
공동묘지였으나 6.25 전쟁 직후 피란민들이 묘지 사이 공간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무허가촌이 형성 되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현재 묘지 80여 기 사이사이에 주택 250여 동이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고 있다.
6년 전 필자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빈집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좁디 좁은 골목을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며 깔깔대던 소리가
아직 귀에 쟁한데, (6년 전 사진)
2009년 두번째 방문 때 벽화시범마을로 지정되어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벽화도 다소 빛을 잃고,
사람사는 정겨운 풍경이 빛을 바랜 것처럼.
무심한 뺑끼?칠만
거칠게 덧입혀져 살 내음 배인 풍경마저 덮어 버린 듯 하다,
연탄재를 가지고 와서 패인 길을 메우시는 할머니
"이젠 예전 같지 않아... 재미도 없고," 하시며 한숨을 뱉으신다.
문득 낯익은 장소에서 걸음을 멈췄다.
6년 전 첫 방문 때 저 길섶에서 얘기를 나누던 두 분,
이북 억양을 쓰시던 왼쪽 할머니, 평안하신지 궁금하다. (2006년 사진)
"다들 잘 되어서 나갔어, 여기가 명당이래..." 하셨는데,
마을 윗쪽 전포돌산공원 울타리에,
잘 되어서 나갈 또 한 사람의 이름이 걸려 있다.
2012. 02. 11.
(이상 글과 사진은 조선일보에서 빌려온 자료로써 원작자의 항의시 정중한 사과와 함께 즉시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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